Skip to content

남의 눈으로 나를 보는 일

남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며 살아온 시간과,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

어릴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별다른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였고,
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거였다.

누구와 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굳이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지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그랬다.

어린아이였으니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전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어울리던 친구들과도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겼다.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였고,
그 안에는 나름대로의 분위기와 규칙 같은 게 있었다.

나는 그게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누구와 어울려야 자연스러운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하면 이상해 보이지 않는지.

그때는 그런 걸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배웠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도
꽤 많았던 것 같다.

왜 그랬는지는
한참 뒤에야 생각해봤다.

당시에는 그냥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주변에서도 그렇게 봤을 것이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을 꽤 많이 관찰하면서 자란 것 같다.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걸 따라 하려고 애썼던 기억은 별로 없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럽게 배워서
당시에는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사람은 원래 주변 사람을 보면서 배우니까.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생각하는 방식도 그렇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된 뒤 예전의 나를 돌아보다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던 모습들 중에
사실은 다른 사람을 보면서 익힌 것이 꽤 많았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다.

그동안 나는 그게 그냥 나인 줄 알았으니까.

어떤 행동은 너무 오래 반복해서
이제는 하지 않는 게 더 어색했고,

어떤 말투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가끔 생각했다.

어디까지가 원래의 나고,
어디까지가 배운 나일까.

처음에는 그걸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원래의 나를 찾아내고,
그 위에 붙은 것들을 하나씩 떼어내면
진짜 내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잘 모르겠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가짜인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아 좋아하게 된 것이고,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책이나 친구나 살아온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말투도, 취향도, 가치관도
완전히 혼자 만든 것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보며 배운 나와
원래의 나를 어디에서 나눠야 할까.

애초에 그런 경계가 있기는 한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그것도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이라는 것.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다고 해서
그동안의 나를 전부 가짜라고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꽤 신경 쓰며 살았다.

누군가 나를 보며

너는 원래 이런 사람이잖아.

너라면 이런 걸 좋아하겠지.

너는 나중에 이렇게 살 것 같아.

라고 말할 때가 있다.

대부분 별다른 악의 없이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지금까지 본 나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니
나름대로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아닌데.

하지만 굳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 하나를 바꾸기 위해
내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도 피곤했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웃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일 때는
정말 별일이 아니다.

문제는 오랫동안 반복될 때였던 것 같다.

여러 사람이 계속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바라보고,
나 역시 그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 헷갈린다.

저 사람들이 나를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나를 잘못 알고 있는 건지.

모두가 나를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나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나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내가
점점 더 현실적인 것처럼 느껴졌고,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예외처럼 느껴졌다.

아마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도
그 부분이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나를 다르게 보는 것 자체보다

그 사람들의 시선으로
나까지 나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

성인이 된 뒤에는
그런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런저런 삶을 보다 보니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제각각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도
가까이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생각했고,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방식으로
살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무엇보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이건 조금 늦게 알았다.

나는 내가 조금만 다르게 행동해도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다르게 선택하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했고,

그래서 하기 전부터
스스로 포기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면 별일이 없었다.

내가 오늘 평소와 조금 다르게 행동했다고 해서
그걸 집에 가서 계속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잠깐 보고 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자기 일을 한다.

조금 허무했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신경 썼는데 말이다.

물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

나도 그럴 것이다.

첫인상을 보고 성격을 짐작하기도 하고,
몇 가지 행동만 보고 어떤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니까.

보이는 걸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판단이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틀린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보인 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편해졌다.

그때부터는 내가 무엇을 하는 이유도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선택하기 전에
나에게 어울리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이상하지 않을지,
지금까지의 나와 너무 다르게 보이지 않을지.

지금은 예전보다는
내가 좋아하는지를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물론 잘 안 될 때도 많다.

사람의 눈치를 몇 년도 아니고 아주 오래 봐왔는데
갑자기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이상하다.

나 역시 여전히 어떤 상황에서는 주변에 맞추고,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기도 한다.

다만 예전처럼
그걸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 보이는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둘 중 하나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회사에서의 나와 친구 앞의 내가 다르고,
가족과 있을 때의 나도 조금 다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사람마다 보여주는 모습이 다른 것이
꼭 자신을 속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인간관계라는 게
원래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동안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나답게 산다는 것은 대체 뭘까.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사는 것일까.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나 혼자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취향도 결국 어딘가에서 본 것이고,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모습도 사회에서 배운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의 영향을 받은 선택은
나답지 않은 것일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내가 알고 선택한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과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것은 다른 일일 테니까.

예전에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따라가면서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다.

지금은 적어도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불편한지는 조금 더 알고 있다.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이지만
나에게는 꽤 크다.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반영된 평가’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본다고 느끼는지와
완전히 무관하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생각해보면 별로 놀라운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 부터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을 배운다.

잘했다고 하면 내가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이상하다는 반응을 받으면

정말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일종의 거울처럼 사용하는 셈이다.

나는 그 개념을 알고 나서
예전의 내가 조금 이해됐다.

왜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왜 수많은 사람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내가 다르면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는지.

그리고 왜 지금도 가까운 사람이
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면 조금 서운한지.

아무리 내가 나를 잘 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시선이 완전히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으니까.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해받고 싶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고 있으면
마음이 쓰인다.

그게 꼭 나약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사람이라 그런 것 아닐까.

그러면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아야 할까.

나는 그것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적당히 신경 쓰는 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가 너무 다르다면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하다.

내가 스스로는 친절하다고 생각하는데
주변 모든 사람이 나를 무례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그냥 ‘나는 원래 친절한 사람이야’ 라고
끝낼 문제는 아닐 것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시선 덕분에
내가 모르던 나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남의 생각은 전부 틀렸고
내가 생각하는 나만 진짜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도 조금 이상하다.

다만 다른 사람이 보는 나를 참고하는 것과

그 시선을 그대로
나에 대한 정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 같다.

아마 나는 그 둘을 오랫동안 구분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내가 그렇게 보였구나,

정도로 생각하지 못하고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인가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반복되면 어느 순간
내가 알고 있는 나보다 남들이 알고 있는 나를 더 믿게 된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가끔 어릴 때의 나를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행동해야 자연스러운지를 배웠던 아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 아이.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고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서

그냥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던 아이.

지금 그 아이를 만난다고 해서
아주 좋은 말을 해줄 자신은 없다.

어쩌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 정도는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보는지
너무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앞으로도 사람들은 계속
너를 자기 방식대로 이해할 것이라고.

어떤 사람은 꽤 정확하게 볼 것이고,
어떤 사람은 전혀 엉뚱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그걸 전부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본다는 이유로

너까지 너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지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완전히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몇 년 뒤에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원래의 나와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나를 완전히 구분하는 일도
이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결국 그 모든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 나니까.

다른 사람이 보는 나도
분명 나의 일부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한 모습을
그 사람이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타인의 시선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게 나에 대한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나를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했다.

그리고 그 시선과 내가 알고 있는 내가 다를 때면

대부분 나를 의심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사람인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생각하는 모습과 내가 다르다고 해서
내가 다시 그 사람에게 맞출 필요도 없다.

그 사람이 보는 나도
나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나도
분명 있다.

남의 시선으로
자기 자신까지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야 조금씩

그러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