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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너머의 본질

시스템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이 시스템을 위해 존재하는가.

회사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삶이 일에 맞춰진다.

몇 시에 자야 할지 생각하고, 쉬는 날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친구를 만나도, 병원에 가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보내는 시간도 일에 지장이 없도록 정하게 된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고 나면 남은 시간은 내 시간이라기보다,
다음 날 다시 일하기 위해 쉬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삶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계속 일하기 위해 삶을 관리하고 있는 걸까.

회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을 여러 사람이 함께할 수 있게 해주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기도 한다.

내가 맡은 일이 생기고, 그 일을 잘 해냈을 때는 성취감도 느낀다.
내가 사회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돈도 마찬가지다.

돈이 있어야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조금 더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많은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들고, 지금보다 나은 조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돈과 회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돈이 중요하다는 것과,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돈은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기 위해 만들어졌고,
회사는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고 함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결국 둘 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만든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처음의 이유를 잊기 쉽다.

회사는 계속 성장해야 하고, 수익은 매년 늘어나야 한다.
사람도 지난해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야 한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바로 다음 목표가 생긴다.
잘한 일보다 부족했던 일이 먼저 보이고,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면 의욕이 없거나 뒤처진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계속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 이상하다.

회사의 규모와 수익은 계속 늘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

더 많은 성과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그만큼 쉴 시간과 인간관계, 건강을 포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일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삶을 위해 만든 것이 삶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돈과 회사를 그저 필요한 것으로만 보지도 않는다.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연봉은 얼마인지,
어떤 직위인지를 가지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기도 한다.

더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은 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
더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의 말은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물론 사람의 성과와 능력을 평가할 기준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에서 낸 성과는 그 사람이 가진 모습 중 하나일 뿐이다.

연봉과 직위는 회사 안에서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는 보여준다.
하지만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일을 겪으며 살아왔는지까지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그런 숫자와 기준으로 나 자신까지 바라보게 된다.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수입이 기대만큼 높지 않으면 뒤처지고 있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에는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의 나를 따로 생각하기 어려워질 때도 있다.

회사에서의 역할이 나의 전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늘 이런 기준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하는 게 싫었다.

사람마다 원하는 삶은 다를 텐데,
왜 모두가 같은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목표일 수 있다.
그걸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줄곧 돈과 회사가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그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성과와 평가를 신경 쓰게 된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것 같으면 불안해질 때도 있다.

그 기준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매일 그 안에서 살아가다 보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계속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위라고 하면 흔히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나는 무위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보다는,
억지로 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간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더라도
그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면 굳이 오르지 않는 것.

더 많은 것을 얻겠다고
지금의 삶을 모두 써버리지 않는 것.

노력하는 것과 자신을 망가뜨리는 것은 다르다.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할 수는 있지만,
그 책임 때문에 몸과 마음이 무너질 때까지 버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잠시 멈췄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나는 무위를 그렇게 생각한다.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억지로 좇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길을 계속 걸어가지 않는 것.

물론 돈과 회사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돈은 여전히 필요하다.
회사에서 번 돈으로 살아가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힘들다고 해서 모든 일을 피할 수도 없다.

그래서 무위와 함께 중용을 생각하게 된다.

노자의 무위와 유가의 중용은 서로 다른 생각이지만,
내 삶에 놓고 생각해보면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중용은 무조건 가운데를 고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과
돈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절반을 고르는 것도 아니다.

나는 중용을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는 것에 가깝게 생각한다.

돈도 필요하고 회사도 필요하다.

일을 잘하고 싶을 수도 있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내 시간과 건강,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계속 뒤로 밀려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위가 굳이 좇지 않아도 되는 것을 놓아두는 것이라면,
중용은 그 안에서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계속 살펴보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돈이 많아지면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늘어나고,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도 있다.

나 역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

하지만 돈을 버느라 정작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면,
왜 돈을 벌고 있는지는 한 번쯤 다시 생각해야 한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는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돈과 회사를 내 삶보다 앞에 두고 싶지 않다.

일을 하되 일이 내 삶의 전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돈을 벌되 돈으로 나와 다른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 지금의 나를 모두 써버리고 싶지도 않다.

내가 생각하는 무위와 중용은 결국 그런 것이다.

남들이 가는 길이라는 이유만으로 따라가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잃지 않을 정도로
돈과 회사를 내 삶 안에 두는 것.

우리는 계속 성공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야 하며,
지금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멀리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갔는지가 아니라,
그곳이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인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일은 내가 원하는 삶과 이어져 있는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이유로
내가 지키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지금의 나는,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삶을 다른 무엇보다 뒤에 두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